NOTICE 
SF 미드인 배틀스타 갈락티카가 시즌 4, 20화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한국에선 그다지 유명하지 않을 뿐더러 미국에서도 매니아층의 드라마에 가까운 이 SF 드라마는 1978년 동명의 드라마를 리메이크하면서 시즌 4까지 이어왔다. SF 드라마의 왕언니격인 '스타트랙'의 아류격이라고 생각하며 보기 시작했던 나는 이제는 단연코 이 드라마는 스타트랙과는 차별화된 훌륭한 작품이라고 말할 만큼 빠져들었다.


갈락티카의 특징중 하나는 일반적으로 SF드라마가 가지는 특성인 '미지의 세계'나 '외계 지적생명체'에 대한 탐험과 대립이 없다는 것이다. FTL이라 부르는 순간이동장치를 통해 우주 구석구석을 여행할 수 있는 그들이지만 한번도 입이 튀어나오고 발 다리가 3개씩 달린 우주인은 등장하질 않는다. 인간이라 불리는 드라마의 주인공 종족은 실제 '지구인'이 아닌 코볼에서 떠난 12종족으로 우리 입장에서는 외계인에 가깝지만, 인간의 형상을 띄고 있고 많은 문화 사회적 부분이 인간과 유사점을 갖는다. (이유는 드라마 말기에 나온다) 또한, 인간이 창조한 사일런이라는 기계생명 역시 진보된 버전에서는 인간의 형상을 닮아 있다.

두번째 주목할만한 점은 '신'과 '신의 계획'에 대한 비중이 높다. 높은 정도가 아니라 이 드라마의 핵심 주제라고 봐도 되는데, 자신이 창조한 사일런에게 공격당해 인류은 개체수 4만명 이하의 절체절명의 멸망 위기에 봉착한다. 살던 별, 친구, 그리고 가족을 모두 잃은 인류는 희망을 잃고 사일런의 추가 공격을 받으며 죽는 날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된다. 하지만, 기적과도 같이 그들은 다양한 이적으로 통하여 알게된 13부족, 즉 전설 속에 존재하는 행성인 '지구'로 이주하려는 꿈을 꾸게 된다. 드라마의 대부분의 내용은 '지구'를 찾아 광야와 같은 우주를 돌아다니는 내용이다. 광야 생활 중 그들은 끊임없이 믿음의 좌절, 길잃음 등을 경험하게 되며, 신의 계획과 신의 존재에 대해 흔들리는 믿음을 보이곤 한다.

마지막 편에서-가능한한 스포일링을 자제하면서-일어나는 결말은 신은 나름대로의 계획에 따라 각자 그들이 소원하던 일들이 이뤄지면서 끝이 난다. 예상했던 형태나 방법이 아니었지만 의문점으로 남겨졌던 신의 계획의 큰 맥락과 이적의 실재가 밝혀지며 대단원의 막은 내린다.

이 SF드라마는 고도의 과학과 종교가 서로 대립하지 않고 공존하는 미래의 종교상을 보여준다. 드라마 속 인간은 자신을 닮은 존재를 만들 수 있는 경지까지 올라와있지만 자신의 운명 앞에서는 여전히 나약한 모습을 보여준다. 과학이 터치하는 영역과 종교가 터치하는 영역이 여전히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떤 SF 매니아에게 이 개념은 스트레스로 다가오기도 하는 것 같다. SF가 매력적인 이유중 한 부분이 인간이 DNA적 차원에서 부터 부족한 점을 기술이 채워줄 수 있다는 것인데, 먼 미래(혹은 먼 과거)에도 영적으로 육적으로 힘들어 하는 지적존재를 관찰한다는 것은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스타트랙과 갈락티카에서 2가지 대조적인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스타트랙의 피카드 선장 시절, 과거의 것으로 보이는 미지의 물체로부터 냉동되어 있던 인간들을 발견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 에피소드가 흥미로웠던 것은 냉동된 인간들이 서기 2000년 전후에 살았던 사람들로서 우리의 시각에서 스타트랙의 세계관을 디테일하게 비추어보았기 때문이었다. 과거의 인간들은 어떠한 물질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계에 매료된다. 무한한 금과 다이아몬드를 만들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품지만, 이미 무한한 재화를 생산할 수 있음으로 인해 물질적 부자라는 것은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피카드 선장은 담담하게 이미 모든 인류는 물질에서 자유로우며 불치병도 없는 시대라는 것을 그들에게 설명한다. 인간의 욕심이 더이상 불화나 전쟁을 일으키지 않다는 사실도 전한다. 이 얼마나 이상적인 세계인가.
이와는 대조적으로 갈락티카의 세계에서 인간과 사일런들은 그들이 가진 풍요에 만족하기보다 그들의 나약함을 저주한다. 시즌 4, 15편에서 사일런 1호와 그의 창조주가 나눈 대화를 들어보자.
오랜 여행을 하는 동안
초신성을 본 적 있나?
없어
없다라...
난 봤지
별이 폭발하고 우주의
기초가 되는 걸 내보내는 걸 봤어
다른 별, 다른 행성, 마침내 생명까지
초신성
창조물
난 거기 있었고. 보고 싶었지
그 순간의 일부가 되고 싶었어
우주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그 현상을
내가 어떻게 봤는지 알아?
내 두개골을 둘러싼
바보 같은 젤라틴 안구로 봤지
전자기 스펙트럼 중 조그만 단편만
감지하게 만들어진 눈으로
공기 중의 떨림 밖에
듣지 못하게 만들어진 귀로
우리 5명은 널 최대한
인간과 가깝게 만든 거야

난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아!
감마선을 보고 싶고
X선을 듣고 싶어
난...
난 암흑 물질의 냄새를 맡고 싶어
나 자신의 모순을 알겠어?
제대로 표현조차 못 하고 있잖아
복잡한 생각을 개념화해서 바보같이
한정된 언어로 표현해야 하니까
뭔가를 잡을 수 있는 이런 손보다
다른 것으로 잡고 싶고
나를 타고 흐르는
초신성의 태양풍을 느끼고 싶어
난 기계야
더 많은 걸 알 수 있고
더 많은 걸 경험할 수 있는데
이 불합리한 몸에 갇혀 있잖아
왜냐고?
내 5명의 창조주는 신이
그렇게 하길 원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우리가 신이 아닌 이상, 우주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한들 우리는 유한한 두개골로 둘러쌓여 젤라틴의 안구로 세상을 보는 서브셋일 뿐이다. 모든 것을 안다 한들 만질 수 없으며, 모든 것을 본다 한들 느낄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배틀스타 갈락티카는 Sci-Fi를 통해 혼탁한 현재를 재조명해 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배틀스타 갈락티카 홈페이지

배틀스타 갈락티카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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