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 민족이 있었습니다.
그 민족은 이름과 같이 하나의 단일 민족이었지만,
사는 곳에 따라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45/1948년 8월15일
일제강점에 시달리던 한민족은
드디어 일제가 2차대전의 패전함에 따라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나도 억울했습니다.
일본 건국문화의 원천이라고 자부하는 한민족이
일본의 야욕으로 말미암아 일제강점기라는 치욕스러운 사건을 겪었고
자주독립이 아닌 또 외세에 의한 독립을 얻었으니 말입니다.

화성에 살고 있는 진보는
이러한 치욕을 잊지 말자고 생각했고
그날을 '광복절'로서 해방의 기쁨과 일제강점기의 치욕을 되새기는 날로 정했습니다.

하지만, 금성에 살고 있는 보수는
나라의 태동에 '치욕'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가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보다는 나라가 세워진 날로서의 긍정적인 키워드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그날이 '건국일'이기를 원했습니다.

1950년 6월13일
어찌된 운명인지 해방 후 똘똘 뭉쳤던 한민족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이념에 공명했습니다.
북에서는 평등의 이념이 남에서는 자유의 이념이 흘러나왔습니다.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해란 없었습니다.
그들은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재산을 잃게 되었습니다.

화성에 살고 있는 진보는
해결점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북의 이념과 남의 이념 사이에 타협이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서둘러 모든 것을 버리고 남으로 내려왔습니다.

금성에 살고 있는 보수 역시
너무나도 무서웠습니다.
전통적인 '부'를 전면 부정한 북의 이념 속에서 자비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서둘러 모든 것을 버리고 남으로 내려왔습니다.

보수는 또한 다짐했습니다.
이상론으로 세상을 바꾸거나 만민이 모두 잘 사는 나라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불평등하더라도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 소득수준을 높이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1950/1960/1970/1980
1950대 반으로 갈라진 남의 한민족은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아프리카 난민과 다름이 없던 그 시절, 잘 살아보겠다고 모두들 열심히 뛰었습니다.
못살던 그때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 밥 굶지 말고 살아보자였습니다.

금성에 살고 있는 보수는
정신 없이 뛰었습니다.
자원 없고 작은 땅덩이에서 이겨보려면 뛰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낙오자가 생기고 사람 몇 명 죽었다고 해서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나라부강만을 외치며 뛰고 또 뛰었습니다.

화성에 살고 있는 진보는
정신 없이 뛰던 어느 날 생각이 트이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는 돈 버는 것 이외에 다른 많은 생각해야 될 것들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낙오되는 사람을 돌봐주고 잘못된 방법으로 일이 진행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반대하기 시작했습니다. 데모하기 시작했습니다.

금성에 살고 있는 보수는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대의를 몰라주는 진보가 미웠습니다.
반대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진보의 계획이 미더웠습니다.
그들의 계획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잘사는 세상을 꿈꾸는 빨강냄새가 난다고 매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화성으로 쳐들어가 진보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피 냄새가 진동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금성에 살고 있는 보수는
복잡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정신 없이 뛰는 동안 희생된 많은 것들과
반대하던 진보를 짓밟았던 업이 자신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보수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자신은 그 당시의 필요악이었다고

화성에 살고 있는 진보는
보수가 행한 만행으로 인해 더 이상 보수를 선의의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빨강 옷을 입히고 잔인하게 짓밟던 보수는 정죄의 대상일 뿐입니다.
보수가 잘못했던 모든 것들을 밝혀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잘못은 나라의 뿌리 밑둥이까지 혼탁하게 혼재되어 있었습니다.
자신이 지켜온 나라를 향해 '이 거지같은 나라'라고 침을 뱉어야 할까요?

1990/2000
눈부신 발전을 거듭한 그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마지막 힘을 짜내서 끝까지 달려 '선진국'이라는 대열에 들어서느냐,
아니면 이제부터 뒤를 돌아보고 투명하고 아름다운 나라를 만드는데 주력하느냐,

금성에 살고 있는 보수는
좀더 뛰자고 제안합니다.
아직 멈출 때가 아니라고
멕시코나 브라질처럼 되지 말자고 합니다.
그 모든 것들은 GNP 4만불 시대에 해도 늦지 않다고,

화성에 살고 있는 진보는
이제 주위를 둘러보자고 말합니다.
더 이상 외면할 정도로 가난하지 않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걱정해야 할 때라고 합니다.

왜 우리는 하나의 목소리로 이 모든 것을 외칠 수 없을까요?
무너진 바빌론의 탑과 같이 이것은 세상의 이치일까요?

서로가 서로의 단점을 지적하고 보완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우리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기로에 서게 됩니다.

당신은 화성에 살고 있나요? 금성에 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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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문근영 가족의 좌익성향에 대한 기사를 보다가 떠오른 생각.
사회적으로 우리가 처한 정치적 상황, 경제적 상황에 대처하거나, 혹은 미래의 비전을 정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갈등을 하고 논쟁을 벌이며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한다. 요즘 한국 사회를 보고 있노라면 이러한 갈등이 제각각 명확한 색을 내지 못하고 재잘거리는 혼탁의 안개 속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러한 혼탁한 이데올로기들은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자신의 가치관을 애매모호하게 만들어 버린다.

뜬 구름 잡는 얘기 같아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빨갱이"라는 키워드를 들으면 무슨 생각이 나는가?

이 키워드를 듣는 순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잠재된 이데올로기에 따라 제각각의 느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옆 사람 혹은 넷상에서 이 주제에 대해 얘기를 해본다면 각양각색의 말들이 튀어나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 6.25 전쟁의 아픔과 북한군의 만행을 몸소 체험한 세대의 직접적인 느낌
  • 민주화 도중 민중 탄압의 도구로서 사용되어 갖은 고초를 겪은 세대가 가지는 부정적인 느낌
  • 반대로, 남한의 친북세력이 남한을 적화통일시킬 것 같다는 불안한 느낌
  • 대남공작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한국에서 발생했던 북한 무장공비 뉴스에서 떠오르는 느낌
  • 시대가 흘러 대남공작 같은 말은 유명무실하지만 현 사회체계에 전반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투쟁을 벌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부정적인 표현으로서 사용되는 느낌
  • 같은 대상에 대해 현 시대에도 적화통일을 바라며 김정일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가지는 느낌
  • 통일의 방법에 대해 온화함이나 다양성을 인정하는 부류를 지칭할 때의 느낌
  • 진보성향의 사람들을 비하하는 말로서의 느낌 등...
이러한 느낌들은 개인적 환경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가오며 완벽하게 다른 뜻이다. 그렇다면, 이 키워드에 대해 일례로 대화를 구성해보자.

A: 요즘 인터넷에 빨갱이들이 너무 많아.
B: 정말이요? 요즘 정부에선 빨갱이 안 잡고 뭘 하는 거죠?
C: 뭔소린지... 요즘 세상에 빨갱이가 어딧다고...

A, B, C가 같은 키워드로 얘기하지만 사실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았다. 도리어, 잘못된 정보만을 서로 공유한 셈이 된다. A가 의미하는 빨갱이는 급진적인 진보세력을 가리킨다. B는 그 말을 받아 사회전복을 노리는 대남공작원을 뜻한다. C는 그러한 키워드가 사용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이다.

여기서, 필자가 주장하려는 바는 이중에 누가 옳고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다. 빨갱이라는 키워드는 사라져야 한다라던가 기본 정의가 바뀌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논지는 사회 전반적으로 흐르는 이러한 혼탁성을 논하려는 것이다. 위 예에서도 비약이 있을 수 있지만, 이러한 교류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키워드를 자신의 그림에 맞추어 세상을 보게 되어 더 큰 갈등을 초래하거나 잘못된 인식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필자는 다양한 계층이 가지는 혼탁한 키워드를 분류 정의하는 글을 써보려 한다. 최근 이슈가 됐던 노무현-심상정의 논쟁만 봐도 혼탁한 키워드를 사용하여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행간의 목적으로 봐서는 서로 모르고 하는 행위는 아닐 것이지만)

당장에 자신이 옹호하는 사회단체의 반대세력이 무슨 생각을 한다고 생각하나? 그들의 두 눈에는 '잘못'된 탐욕이 가득하며, 아무런 비전도 없이 반대만 하거나 사회전복같은 극단적인 것을 원하거나, 정신이 나가서 혹은 '멍청'해서 척 봐도 안될 것을 밀어붙이거나, 이치에 맞지 않는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물론, '잘못'된 것을 행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은 옳다. 하지만, 모든 인간의 척도를 넘어서는 잘못인가 아니면 논쟁 가능한 부분인가를 인지하고 있는 것은 중요하다고 본다. "잘못을 탓하는 것과 논쟁하는 것"을 구별할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당장, 진보에서 원하는 나라의 비전과 보수에서 원하는 나라의 비전을 알고 있는가? 사회주의로의 회귀 아냐? 라던지 부자들만 잘 사는 나라겠지. 라고 한다면 당신이 가진 세상에 대한 디테일을 한참 떨어져있다고 평하겠다.

필자 역시 공학도로서 시사적인 부분에 대한 지식은 부족하며 무언가를 가르칠 입장은 아니다. 다만, 나만의 색을 발휘하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색을 관찰하고 분류하고 정리하는 것이 보다 사회를 통찰력 있게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살아가며 노력하고 있다. 다만 그 방향이 다르고 입장이 다를 뿐이다. 나랑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부정성 뿐만 아니라 긍정성을 이해하고 인정했을 때야 비로서 정반합(正反合)이라는 발전적인 흐름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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